사람이 오는 것은 일생이 오는 어마어마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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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사람이 오는 것은 일생이 오는 어마어마한 것 미술관서 벌어지는 일:줄서기, 물물교환, 우주 측정하기…로만 온닥㊦

기사입력2019-05-26 1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디지털문화정책학)

로만 온닥은 미술관에서 줄 서는 일이나 물물교환보다 더 거대한 일을 하기도 한다. 바로 우주를 측정하는 일. ‘우주 측정하기’라는 관객 참여형 작업을 통해 온닥은 우주를 측정한다.

이 작업은 하얀 백색 전시공간에 들어선 관람객에게 벽에 자신의 키를 표시하도록 돕고, 이름과 방문일을 적게 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 작업이 놀라운 것은 그 한 명 한 명의 표시가 모여서 우주같은 공간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시인 정현종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머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로만 온닥, ‘우주 측정하기’, 퍼포먼스, 2007년<출처=art.base.co>

◇우주를 측정하는 미술관=정현종의 이 시를 떠올린다면, 온닥이 왜 이 작업에 이런 제목을 지었는지 이해가 간다. 사람이 오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기에 어마어마한 것처럼, 한 사람이 그 공간에 들어와 키를 표시하는 것은 마치 하나의 별이 생기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래서 온닥은 이 행위를 ‘우주를 측정하는 행위’라고 했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별들이 모여서 우주를 이루듯이, 그 별들 하나하나를 측정하는 것이 우주를 측정하는 것이듯이, 이 세상에 유일한 한 사람이 자신의 키를 표시한 그 흔적들이 모여 세상을 측정할 수 있고, 우주를 측정할 수 있다고 온닥은 생각했으리라.

다른 관점으로도 접근해볼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하나의 우주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키를 재는 것 자체가 하나의 우주를 측정하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온닥은 우주 측정을 우주와 같은 한 사람의 키를 재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러한 제목을 붙였는지도 모른다.

로만 온닥, ‘우주 측정하기’, 퍼포먼스, 2007년<출처=culturacolectiva.com>

분명한 것은 그가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성장하는 아이들의 키를 집안 문틀에 새기는 전통적인 문화에서 이 모티브를 찾았다는 사실이다.

전시장에서 줄 서는 ‘좋은 시간에 좋은 느낌’이라는 퍼포먼스는 온닥의 중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일반 관람객이 가장 뜨겁게 반응한 것은 단연 ‘우주 측정하기’였다. 이 작업은 세계 여러 미술관에서 재연 전시되면서 온닥을 세상에 알리는 대표 작업이 됐다.

미술관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 이건 비단 로만 온닥의 작업만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미술관은 신기한 것과 이상한 행동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줄을 서 있는 작업이 아니더라도, 물물교환하는 작업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키를 표시하는 작업이 아니더라도, 미술관에서는 늘 재미있는 일이 펼쳐져 있다.

미술관의 작업을 꼼꼼히 살피다 보면, 재미있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뭉게뭉게 피어난다. 우주를 측정할 수 있는 미술관. 과연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미술관에서는 여전히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