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현실, 인간 이후와 인간 바깥 세계의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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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새로운 현실, 인간 이후와 인간 바깥 세계의 탐구” 역사를 넘어선 서사 밖의 시뮬레이션…피에르 위그 ‘리미널(Liminal)’

기사입력2025-04-23 16:58

김현성 객원 기자 (artbrunch@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리미널’, 2025, 전시전경, 리움미술관 제공, 사진:LESS 레스.

리움미술관이 프랑스 작가 피에르 위그(b.1962)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 ‘리미널(Liminal)’을 2월 27일 시작해, 오는 7월 6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의 고정된 형식을 깨고 새로운 세계를 탐구해 온 세계적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자리로, 피노 콜렉션의 베니스 소재 푼타 델라 도가나와 협력해 기획됐다.

전시에서는 리움미술관이 제작 지원한 신작 ‘리미널’, ‘이디엄’, ‘카마타’(2024-진행)를 비롯해 대표작 ‘오프스프링’(2018), ‘휴먼 마스크’(2014), 수족관 작품 등 최근 10여 년간 작가의 예술적 탐구를 보여주는 총 12점의 작품이 공개된다.

‘리미널(liminal)’이라는 전시제목은 “생각지도 못한 무엇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의미한다. 피에르 위그에게 전시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살아있는 환경이다. 전시 ‘리미널’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체들이 센서를 통해 주변 정보를 수집하고,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이를 해석하며, 관객의 개입에 따라 실시간으로 진화한다.

동명의 작품에서는 얼굴 없는 인간 형상이 등장하는데, 이 형상의 움직임과 시선은 센서가 포착한 환경조건과 인공 신경조직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정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형상은 전시공간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외부 데이터를 학습하고 기억을 쌓아간다.

이와 함께, 황금색 마스크를 운반하는 인간들의 언어 ‘이디엄’에서는 인간의 발성과 신경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성된 미지의 목소리가 들리며, ‘U움벨트-안리’에서는 외부 환경이나 타자의 관점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같이 설치된 ‘암세포 변환기’는 실제 암세포가 서식하고 지속적으로 분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여기서 만들어진 변화를 기록하는 현미경 이미지 데이터를 ‘U움벨트-안리’로 송출한다.

전시장에 놓인 세 수족관 작품들은 진화하고 있는 세계 그 자체를 보여준다. 수족관 안의 환경은 특별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자연적 생태계를 재현한 것도 아니고, 완벽한 세트장도 아니다. 조건은 정해져 있지만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세계를 제시한다.

‘휴먼 마스크(Human Mask)’, 2014, 영상, 컬러, 사운드, 19분, 스틸 이미지, 피노 콜렉션, 안나 레나 필름 제공

대형 영상작품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우연히 발견된 인간 해골에서 시작됐다. 영상에서는 이 해골을 중심으로 기계가 신비로운 의식을 수행하는데, 이는 끝없는 장례의식을 소환함과 동시에 기계가 인간의 유해를 조사하게 될 시대를 예고하는 듯하다.

피에르 위그는 본인의 작업에 대해 “나는 이야기의 형태가 선형성을 벗어날 때 흥미를 느낀다. 역사를 넘어선 서사 밖의 허구에 관한 것이다. 시뮬레이션은 혼돈을 지날 수 있게 해 주는 여러 가능성의 투영이다”라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작가의 최근 작업은 기존 인간 개념과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현실, 인간 이후와 인간 바깥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며, “이번 전시는 작가의 이러한 상상이 감각적으로 전환되며 관람객에게 강렬한 인상과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1962년 파리 출생인 피에르 위그는 현재 칠레 산티아고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는 파리 소재 프랑스 국립고등예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초기에는 영상작업에 집중하며 현실과 허구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왔다. 최근에는 프로그래밍을 활용한 작업으로 발전하여, 학습하고 변화하며 진화하는 생물학적이거나 인공적인 주관성이 서식하는 세계에 대한 여러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피에르 위그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센터,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2012년 카셀 도큐멘타 13에서는 비평가들의 가장 큰 호평을 받은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이번 ‘리미널’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전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의 개념을 뒤흔들며,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장이 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예술만세 김현성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