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 기억을 내재한 ‘플랜테이션’ 그 위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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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예술 ㅣ 예술경영 식민 기억을 내재한 ‘플랜테이션’ 그 위에 서다 초콜릿의 쓴맛, 예술의 단맛…CATPC의 탈식민 미술

기사입력2025-06-07 0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초콜릿. 누군가는 그것을 ‘사랑의 상징’이라 부른다. 다른 사람은 ‘기쁨의 조각’이라 부른다. 우리 대부분은 그저 한입 베어 문 초콜릿의 달콤함에 빠져 있다. 하지만 이 매혹적인 달콤함의 이면에는 씁쓸한 현실이 있다. 우리가 무심코 베어 문 초콜릿의 주재료인 카카오는, 여전히 아프리카의 땀과 흙에서 자라난다. 콩고민주공화국과 코트디부아르의 열대 플랜테이션(제국주의적 대규모 농장 시스템)에서는 오늘날에도 저임금과 아동노동이 만연해 있다. 그 지역 노동자들은 글로벌 식품 대기업들이 구축한 착취의 사슬 속에서 삶을 이어간다.

초콜릿을 그저 혀끝의 즐거움을 주는 기호식품으로만 볼 수 없다. 지구 반대편의 노동 현실이 내재해 있는 뒷맛이 쓴 물질이다. 이 ‘쓴맛’을 예술로 탈 바꿔 세계 미술계에 강력한 발언을 던지는 예술가 집단이 있다. 바로 ‘콩고 플랜테이션 노동자 예술 협동조합’(Cercle d’Art des Travailleurs de Plantation Congolaise), 약어로 CATPC다. 이들은 초콜릿을 상징적 매개로 삼아 예술시장의 구조와 식민주의의 잔재, 오늘날의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개입해, 내부로부터 그 체계를 흔드는 실험적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흙에서 초콜릿까지…CATPC, 조각을 넘는 형상들

미국 뉴욕에 있는 SculptureCenter에서 2017년 CATPC의 전시 장면. Photo: Kyle Knodell. <출처=www.sculpture-center.org>

CATPC는 2014년 콩고민주공화국(DRC)의 루상가(Lusanga) 지역에서 설립된 예술 협동조합이다. 루상가는 콩고 깊숙한 곳에 있는 마을이다. 유럽 최대 규모의 소비재 기업 중 하나인 레버 브라더스(현재 유니레버)가 100여년 동안 이 마을을 수탈했으며, 그 기업이 이 땅을 완전히 고갈시켜 더는 쓸 수 없게 되자 이 땅을 팔고 떠났다. 이처럼 이곳은 착취의 역사가 스며 있다. CATPC는 이곳에 기반을 두고 플랜테이션에서 직접 일하는 노동자들로 구성한 예술집단이다. 특히 카카오와 팜유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주축을 이루는데, 이들은 경제 및 생태학적 자립을 목표로 예술창작을 통한 사회적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쉽게 예상되듯이 플랜테이션은 다국적 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적은 비용으로 이들의 땅과 노동력을 수탈하는 제국주의적 시스템이다. CATPC는 이러한 땅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당사자로, 이들은 현대미술의 시장 논리를 활용해 노동자들이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는 모델을 구축했다.

아쉬운 부분은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이 이 협동조합을 자발적으로 설립했으면 좋았겠지만, 외부인의 움직임으로 탄생했다는 점이다. CATPC는 네덜란드의 영화감독이자 예술가인 렌조 마르텐즈(Renzo Martens)의 프로젝트에서 비롯됐다. 마르텐즈는 2008년, ‘Episode III: Enjoy Poverty’라는 작업을 통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2년에 걸쳐 촬영한 9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와 ‘Enjoy Poverty’라는 네온사인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이 작업에서 “빈곤이 어떻게 소비되는가?”라는 불편한 질문을 제기했다. 마르텐즈는 콩고의 빈곤이 금, 다이아몬드, 카카오 등 전통적인 수출품보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한다는 사실과 이 수익이 대부분 서구의 언론사, NGO, 사진작가들에게 돌아가며, 실제 빈곤을 겪는 현지 주민들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를 통해 그는 서구 미디어와 인도주의 산업의 위선을 고발했지만, 그 또한 그 구조에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일부 비평가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마르텐즈는 이러한 작업의 귀결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루상가 지역의 플랜테이션 노동자들과 협업해 CATPC를 설립했다.

CATPC는 여러 가지 예술형식을 활용하지만, 특히 초콜릿과 점토를 이용한 조각작품이 대표적이다.

CATPC의 여성 워크숍 장면. 농장에서만 일할 수 있는 여성들에게 예술을 만들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Photo: Eléonore Héllio. <출처=www.humanactivities.org>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과 기억에 새겨진 아프리카 전통의 형상을 점토로 만들어낸다. 이 형상은 3D 스캔되어 디지털 데이터가 되고, 이 데이터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고급 초콜릿으로 재주조되어 초콜릿 조각상으로 완성돼 국제 미술시장에서 선보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아이러니한데, 콩고 노동자가 만든 형상이 결국 그들이 생산한 초콜릿(카카오)으로 만들어진다는 점과 그 과정이 한때 식민본국이었던 유럽을 거쳐 이뤄진다는 점이 그러하다.

하지만 CATPC의 수익구조는 이전의 제국주의적 착취구조와는 다르다. 작품의 판매수익은 협동조합을 통해 고스란히 창작자들에게 돌아간다. 이것은 단순한 순환의 복원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수탈 회로를 예술이라는 방식으로 전복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CATPC의 초콜릿 조각작품은 플랜테이션 시스템이 만들어낸 경제적 착취구조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고 있다. 글로벌 초콜릿 산업의 불평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서구 중심의 경제시스템에서 착취당하는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예술을 통해 스스로 가치를 재정립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CATPC는 초콜릿 조각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비디오 아트, 드로잉, 퍼포먼스를 통해 노동자의 일상과 기억, 세계의 불평등한 구조를 드러낸다. 이들의 다큐멘터리적 방식은 삶 그 자체를 기록하고 성찰하는 방식이며, 이들의 조각은 기념물이 아닌 제국주의적 시스템의 증언이라 할 수 있다.

흰 벽에 새겨진 어둠…루상가의 화이트 큐브와 탈식민 공간

CATPC의 미학은 정확히 서구의 제도를 겨냥한다. 초콜릿 조각을 통해 제국주의적 수탈 회로를 가시화했을 뿐만 아니라, 서구의 미술제도까지 재고하게 했다. 그것이 바로 루상가 지역에 건설한 미술관 ‘화이트 큐브’(White Cube)다. 이 미술관은 2017년 4월 21일 개관했는데, 이름이 ‘화이트 큐브’라는 점에서 서구 미술제도를 곧바로 떠올리게 한다. 서구 미술제도에서 화이트 큐브는 중립성과 순수함, 미학적 거리 두기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사실상 서구 미술계의 이념적 순백을 상징하는 기표이며, 자본과 권력이 스며 있는 전시제도다.

CATPC 멤버들(화이트 큐브 미술관을 배경으로). <출처=https://catpc.org>

루상가의 ‘화이트 큐브’는 그 이름 자체가 비판이며, 그 존재 자체가 식민 유산에 대한 기억이다. 더욱 상징적인 것은 이 미술관이 과거 레버 브라더스(유니레버)의 팜유 플랜테이션 부지에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식민의 기억을 내재한 플랜테이션의 중심지가 이제는 노동자 예술가들이 스스로 운영하는 미술관이 된 것이다.

화이트 큐브 미술관은 단지 미술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다. 이곳은 ‘루상가 국제 예술 및 경제 불평등 연구센터’(LIRCAEI, Lusanga International Research Center for Art and Economic Inequality)의 핵심시설이다. 전시뿐만 아니라, 공동체 기반의 지식을 생산하는 곳을 지향한다.

예술은 이곳에서 삶과 통합된다. 판매되는 작품들은 단순히 창작의 결과물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모델의 실험 대상이 된다. CATPC는 LIRCAEI를 통해 경제적·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며, 예술을 통해 지속가능한 경제모델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CATPC는 단순한 지역 협동조합을 넘어, 국제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뉴욕, 베를린, 네덜란드 등지의 주요 미술관 및 기관에서 전시를 개최하고 있는 이들은, 서구 미술관의 전통적인 권력을 비판하면서도, 이를 활용해 노동자들의 예술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현대미술이 가진 경제적 구조를 문제 삼는다. 이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되묻는다.

“예술은 누구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무엇이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가?”

“그 예술의 수익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CATPC의 작업은 서구 미술시장이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에게 부여하는 가치와 그들이 처한 경제적 현실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며,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이 예술을 통해 스스로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모델을 보여준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