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으로 게임 하면서 ‘발달장애’ 치료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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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휴대폰으로 게임 하면서 ‘발달장애’ 치료가 되네 자폐 아동 디지털 치료기기 ‘버디인’…뉴다이브 조성자 대표

기사입력2025-08-07 17:15

김범규 기자 (bgk7@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조성자 대표가 장소와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자폐스펙트럼 디지털 치료기기 버디인을 보며 앉아 있다. ©중기이코노미

“민수야, 혹시 부탁 하나 해도 될까? 과학 시간에 내가 발표할 차례거든. 민수의 심해 생물 이야기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서.”

자폐 성향을 보이는 민수는 심해 생물 이야기에 소위 ‘꽂힌’ 아이로 반에서 유명하다. 하지만, 책을 빌려달라는 친구의 부탁이 내심 못마땅하다. ‘과연, 내 책을 소중하게 다뤄줄까?’ ‘내 책을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게 싫은데 어떡하지?’ 등 고민이 많기 때문이다.

이때 엄마가 민수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준다. ‘어려운 부탁인지, 아닌지’, ‘부탁을 거절했을 때 친구의 감정은 어떨지’ 등 다양한 상황을 고려한 뒤, 민수가 직접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는 사회성 상황인지 기반 사회성 증진 디지털 치료제인 ‘버디-인(buddy-in)’의 치료 과정 중 하나다. 소프트웨어 안에 들어 있는 가상 친구와의 대화 후, ‘빌려준다 vs 빌려주지 않는다’ 중 선택을 하면 선택에 따른 상황이 펼쳐지고, 이에 맞는 연습문제들이 계속 나온다.

뉴다이브(NEUDIVE)는 이처럼 자폐 아동을 위한 ‘사회성 디지털 치료기기’를 개발해 업계의 이목을 받고 있다.

조성자 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글로벌 제약회사를 세 군데 다니면서 자폐스펙트럼 장애 약물은 개발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약물이 없다 보니 현재 표준 치료는 카드같은 걸 보여주면서 ‘이 친구는 뭐 하고 있지?’, ‘친구의 표정이 어떻지?’, ‘이 다음엔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등 대면 치료가 전부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을 디지털화하면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치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화이자제약 최초 여성임원…기쁨과 슬픔이 교차한 시절

조성자 대표가 환하게 웃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서울대학교 의대에서 가정의학과를 전공한 조성자 대표는 을지의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화이자제약에 있던 선배의 요청으로 제약회사에 첫 발을 들이게 됐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 처음 비아그라를 론칭하던 때라 바쁜 시기이기도 했고, 외국에서 개발된 약을 단순히 팔던 판매조직에서 임상시험을 통해 신약 확보에 열을 올리던 때라 제약회사 내 의사의 필요성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존재는 미국, 유럽, 일본에 비해 미비하기만 했고, FDA에서는 미국에서 시행한 임상시험 결과만 인정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시행한 첫 번째 임상시험 성공을 기회로 한국에 훌륭한 인적자원이 많고,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수준도 높다는 사실을 미국 본사에 셀링하면서 글로벌 임상시험 기회를 한국에 성공적으로 수주했다. 그러면서 한국인의 데이터가 FDA에서 인정받는 등 글로벌 입지도 올라갔다. 이는 3~5년 뒤에나 쓸 수 있는 약을 미리 들여와 임상시험 할 수 있는 기회이자, 신약개발 시간도 벌 수 있는 여러 의미 있는 성과였다.

한국의 데이터를 무시했던 일본에서도 이런 유의미한 결과물이 쌓이자, 2001년에는 일본 후생노동성의 초청으로 조성자 대표가 한국의 우수한 의료환경에 대해 발표하는 자리도 가질 정도로 입지도 확고해졌다.

매니저로 입사한 조 대표는 여러 성과를 인정받아 40대 초반에 한국화이자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되는 영광도 안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승진한 지 불과 한 달 후에 아이가 자폐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조 대표는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털어놨다.

“임원으로서 일은 일대로 많았고, 집에서는 아이로 인해 심적으로 힘들었다. 1년 동안 고전분투하다가 퇴사를 결심했지만,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1년 휴직을 줬다”며, “그동안 열심히 병원에 다니며 치료했다. 하지만, 자폐라는 게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회사를 그만두며 2011년까지 6년간 전업주부로 살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조성자 대표가 버디인의 가상 친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그가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던 것은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난 이후에나 가능했다. 이후 화이자제약에 복직해 10년간 일했고, 얀센, 릴리 등 정신신경계 주요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는 글로벌 제약기업의 임원과 부사장을 거쳤다.

그러면서 자폐 치료 관련 약물이 개발되기를 기다렸지만, 자폐스펙트럼 장애의 경우 여전히 약물치료가 없는 상태이고, 신약개발도 요원한 상황이다.

조 대표는 “자폐는 고혈압과 같은 일반 질환처럼 발생하는 메커니즘이 확립돼 있지 않아 바이오마커를 특정할 수 없어 신약개발이 힘들다”며, “자폐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여러 가지 가설 중 어느 것 하나 규정돼 있지도 않은 상황”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코로나 시절…‘디지털 치료기기’의 가능성을 발견하다

조성자 대표가 희망의 빛을 발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가 기점이 됐다. 아이가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코로나19가 터져서 줌으로 수업하게 됐는데, ‘이게 될까?’ 의심했던 것과 달리 적응을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조 대표는 “자폐 아이들은 예측할 수 있어야 당황하지 않는다. 그런데, 줌 수업이라는 게 정형화된 상황이고, 선생님에게 리액션을 해줄 필요도 없다 보니 의외로 잘 맞았다. 게다가 녹화 동영상의 경우 자기가 속도를 조절하면서 반복해서 볼 수 있다 보니 오히려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떠올렸다.

조성자 대표는 버디인이 치료 접근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기이코노미

이어 “마침 디지털 치료기기에 관한 법규가 많이 제정된 시기이기도 했고, FDA에서도 승인된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약물로 개발되기는 어렵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디지털 솔루션이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에게 효과가 있었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프로그램을 디지털화하면 치료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정년퇴직할 나이도 가까워오면서 한살이라도 젊을 때 뭔가를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디지털 치료기기를 알게 되면서, 조성자 대표의 제2의 인생 방향성이 그려진 것이다.

하지만, 창업에 대한 두려움이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때 조 대표는 암 환자용 디지털 치료기기를 개발하는 회사와 뇌 질환 의료 인공지능 관련 회사에 다니며 ‘아! 벤처라는 곳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개발직, 연구직은 이렇게 되는구나’ 등 스타트업 생리와 조직 상황, 사업계획서 쓰는 방법 등을 차근차근 배우며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가상친구와 대화하며 사회성 UP…‘자폐 디지털 치료기기’

2022년 2월, 의료 인공지능 회사에 다니면서 창업한 조 대표는 대웅제약, 한올바이오파마 등 여러 창업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며 첫해에만 3억5000만원의 지원금을 확보했다.

먼저, 프로그램 기획을 본격화하기 전에 자폐 아동 부모와 특수 교사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치료기기 안에 담기 위해서다. 그러자 공통으로 돌아오는 대답은 ‘맥락을 연습하면 좋겠다’였다.

조성자 대표에 따르면, 자폐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치료받을 수 있는 기관들이 부족해지면서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시기에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나마 대면 수업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전문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주 50분 수업에 6만원~10만원이라는 높은 비용이 든다. 국가 지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연령과 경제적 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되거나 받지 못하는 가정도 많다.

이에 뉴다이브에서 개발한 버디인이 해결점이 될 수 있다. 버디인은 의사가 처방하는 의료기기로, 처방 코드를 받아 휴대전화에 설치해야 이용할 수 있다. 대상자는 치료의 사각지대에 있는 나이대의 아이들로, 10~18세가 해당되고,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대화 형태로 구성해 프로그램화했다. 가령, 급식시간에 벌어질 수 있는 일, 친구 사이의 갈등, 갈등이 일어났을 때 해결 방법 등이다.

특히, 더빙으로 대화가 이뤄지다 보니 상황마다 미묘한 뉘앙스들이 나오고, 그날그날 배운 부분은 부모와 연습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하루에 10~15분 정도 일주일에 다섯번 사용하면 일주일에 총 노출되는 시간은 대면수업과 유사하다.

무엇보다도 여러번 반복해서 복습할 수 있고, 장소에 상관없이 원할 때 사용할 수 있어 접근성 면에서 우수하다. 게임을 통해 문제를 잘 맞히면 보상 스토리도 나오도록 설계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6주 간 이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설정돼 있고, 다음 스텝도 준비 중이다.

임상시험 결과도 긍정적이다. 삼성서울병원,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등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했고, 의사소통, 생활 기술, 사회성 등 주요 지표가 개선되는 등 2023년 2월, 2024년 5월에 탐색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 지금은 확증임상시험 분석 중이다. 또한, 2025 CES 혁신상 수상, 2022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신의료기술평가 길라잡이 서비스 대상 제품으로 선정되는 등 국내외에서 영향력이 높은 기술로도 주목받고 있다.

뉴다이브는 오는 9월에 식약처에 허가를 제출할 계획인데, 식약처 허가를 받게 되면 허가 당국에 승인받은 세계 최초의 자폐스펙트럼 장애 치료 디지털 의료기기가 된다.

이후에는 해외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현재 뉴다이브는 일본 후쿠이 의과대학과 업무협약을 맺고, 자폐 아동 디지털 치료제 실증을 진행 중인데, 일본을 넘어 미국, 독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조성자 대표는 버디인이 치료 접근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치료센터가 부족한 지방에서 치료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소망도 함께 전했다.

“비장애 아이들도 옆에서 얼마나 서포트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하물며 발달 장애인은 그 편차가 더욱 심하다. 우리 아이도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 부반장이 되기도 했다가, 퇴행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며, “언젠가는 우리 아이만 남겨놓고 내가 떠날 세상이 올 텐데,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엄마가 옆에 없어도 아이가 지금까지 보였던 기능들이 끝까지 보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