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자금이 부동산 아닌 자본시장으로 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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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경제일반 가계자금이 부동산 아닌 자본시장으로 향하게 혁신기업과 신성장산업으로 자금이 공급되도록 해야

기사입력2025-10-17 11:3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우리나라 가계자산이 여전히 부동산 중심으로 형성돼 있어, 생산성이 높은 산업으로 자금이 원활히 공급되지 못하고 경제성장의 잠재력을 제약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가계 자산의 자본시장 참여 확대 필요성과 과제’ 보고서에서 “부동산 중심의 자산 형성은 자금이 혁신기업 등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경제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가계자금이 국내 자본시장으로 유입되도록 정책적 인센티브와 제도적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부동산 비중 과도한 가계자산… 미국과는 대조적

정 연구위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의 GDP 대비 순자산 배율은 5.25로 주요국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자산 구성은 크게 다르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가계자산의 비금융자산(주로 부동산) 비중은 65%, 금융자산은 35%에 그친다. 반면 미국은 주식·채권·펀드·연금 등 자본시장 자산의 합계 비중이 약 50%에 달한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순자산 계층별로 살펴보면 이러한 구조적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한국은 상위 1% 부유층일수록 부동산 비중이 더 높아지는 반면, 미국은 순자산이 많을수록 부동산 비중이 낮고 금융자산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2024년 기준 한국의 상위 1% 가계는 자산의 79.4%를 부동산에 보유하고 있는 반면, 미국 상위 1%의 부동산 비중은 13.1%에 불과하다.

정 연구위원은 “한국의 자산 형성 방식은 자발적인 변화가 어렵다”며 “정책적 유인을 통해 금융자산 중심의 포트폴리오로 전환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가계의 여유자금이 자본시장으로 유입이 되면 어떨까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혁신기업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됐다. Didier 등(2021)의 국제 비교 연구에 따르면, 자본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한 기업은 은행 차입에 의존하는 기업보다 성장률과 고용 증가율이 높고, 연구개발(R&D) 투자 비중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 연구위원은 “특히 소규모 신생기업이나 R&D 중심 기업처럼 금융제약이 큰 기업일수록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성장으로 이어지는 효과가 크다”며 “이는 가계의 여유 자금이 자본시장으로 유입될 경우, 혁신 중심의 성장 구조를 뒷받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유럽 사례도 주목된다. 유럽연합(EU)은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가 주도한 ‘드라기 보고서(2024)’를 통해 “유럽의 금융중개 효율성이 낮은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자본시장의 분절성과 저축의 낮은 자본시장 유입률”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민간 저축이 은행 예금 등 안전자산에 머물러 생산적 투자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시장연합(Capital Market Union) 구축과 사적연금 활성화를 제시했다.

정 연구위원은 “유럽의 문제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며 “가계 자산이 금융시장으로 충분히 흐르지 않으면 혁신기업과 신성장 산업으로의 자금 공급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투자 의존, 가계부채와 금융 불균형 심화시켜

정 연구위원은 부동산 중심의 투자 행태가 가계부채 증가와 금융 불균형 확대를 초래한다는 점도 경고했다. 주택은 거래 단위가 크고 대부분 레버리지를 활용하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가 높아질수록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는 구조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최근 기준금리 인하의 제약 요인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와 그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를 언급하기도 했다.

반면 자본시장 상품은 자기자본만으로 투자할 수 있어, 금융 레버리지 부담이 크지 않다. 정 연구위원은 “자본시장 중심의 자산 형성은 가계부채 문제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며 “이는 통화정책의 안정성과 금융시스템 건전성 확보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가계자산의 자본시장 유입을 확대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정 연구위원은 연금 세제혜택 강화를 제시했다. 우리나라의 의무가입 연금 소득대체율은 31.2%로 OECD 평균(50.7%)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그는 “가계의 노후 대비 자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부동산 중심의 자산 구조는 유동성 문제를 심화시킨다”며 “연금 적립에 대한 세제혜택 확대를 통해 금융투자 기반의 노후 준비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대표적 퇴직연금 제도인 401(k)의 연간 납입 한도는 2025년 기준 7만 달러로, 고용주와 근로자 합산 납입액에 대해 상당한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 이러한 인센티브는 가계자금이 연금 계좌를 통해 자본시장으로 흘러드는 주요 통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연금 세제혜택 강화는 단순히 가계자산의 금융시장 유입을 촉진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노후빈곤 완화와 국가 재정부담 경감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뢰할 수 있는 수익률’ 중요… 자본시장 매력 높여야

정 연구위원은 “가계자금이 자본시장으로 흘러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정적이고 충분한 수준의 수익률을 제공해 투자자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주식시장은 주요국에 비해 장기 수익률이 낮고, 부동산은 상대적으로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며 “이러한 격차가 가계의 부동산 선호를 강화해왔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최근 국내 기업의 주주환원 확대, 지배구조 개선, 성장성 제고 등 자본시장 개혁이 추진되면서 주식시장의 성과도 개선되고 있다. 블룸버그 통계(2025년 7월 기준)에 따르면, 한국 주식시장은 주요 해외지수 대비 우수한 상승세를 보였다.

정 연구위원은 “이 같은 제도 개선이 지속된다면 국내 자본시장의 신뢰성이 높아지고, 가계자금이 생산적 부문으로 이동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와 금융당국은 자본시장의 제도·운영 개선을 꾸준히 추진해 시장의 경쟁력과 매력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