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중심 금융’에서 ‘사업성 중심 금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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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부동산 중심 금융’에서 ‘사업성 중심 금융’으로 돈이 부동산 아닌 기업으로 갈수 있도록 금융 본연의 기능 회복을

기사입력2025-07-31 11:37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부동산 중심 금융’에서 ‘사업성 중심 금융’으로 금융의 중심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이 부동산 관련 대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자금이 과도하게 부동산 시장으로 쏠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만, 기업의 사업성과 성장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사업성 중심 대출’을 적극 확대해 실물경제를 뒷받침하는 금융 본연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부동산 중심 관행적 금융에서 사업성 중심 금융으로의 전환을 위한 과제’ 보고서는 “최근 국내 금융시장은 부동산 중심의 대출 관행으로 인한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국가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고 진단하며, 금융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 고착화된 ‘부동산’ 쏠림 구조=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기업대출 또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를 계기로 리스크 관리 강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대출 시장 전반에 만연한 부동산 담보 의존 관행은 이미 오래전부터 구조적 한계로 지적돼 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부동산 관련 대출은 2681조6000억원으로, 2019년 이후 연평균 7.8%씩 증가하며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2023년 기준 국내 중소기업 대출의 72.4%가 담보 기반이며, 이 중 94.3%가 부동산을 담보로 한다. 창업 초기기업, 무형자산 중심 기업, 기술 기반 스타트업 등은 이 같은 구조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신용도가 높아도, 사업모델이 혁신적이어도, 부동산이 없으면 자금조달이 사실상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보고서는 이러한 부동산 쏠림 현상이 경제 및 금융 상황 악화 시 가계와 기업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가중시키고, 이는 금융회사의 리스크 관리 강화,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며 다시 상환 부담을 높이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거시경제 차원에서도 가계의 과도한 상환 부담은 소비 위축과 총수요 감소를 초래해 고용과 투자가 위축되고, 궁극적으로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등 실물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부동산 중심 금융이 기업의 본업보다 부동산 확보를 우선시하는 왜곡된 경영 행태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경쟁력 약화라는 중장기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미래가치 ‘사업성 중심 금융’ 필요=보고서는 금융의 중심이 ‘부동산 중심 금융’에서 ‘사업성 중심 금융’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중심 금융이 과거 자산가치에 기반해 대출을 실행하고, 부실 발생 시 담보자산을 통해 회수하는 구조라면, 사업성 중심 금융은 기업의 미래 현금흐름, 성장 가능성 등 미래가치를 기준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사업성 중심 금융은 기업의 사업 단계(초기-성장기-성숙기)에 따라 필요한 자금을 유연하게 공급할 수 있으며, 향후 기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금융회사가 사업 이해도와 정보력을 바탕으로 회생에 적극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대출 회수가 아니라 기업과 금융이 함께 리스크를 나누며 성장하는 구조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한국경제에서 금융이 실물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미래가치에 기반한 금융 공급확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사업성 중심 금융’ 제도적 기반을=보고서는 사업성 중심 금융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첫 단계로 부동산 중심 금융에 대한 리스크 관리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위험가중치 조정, 총여신 또는 자기자본 대비 한도 규제, 완충자본 제도 등의 도입을 제안하며, 이는 금융회사의 부동산 관련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줄이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규제는 금융회사의 자본 비용증가와 대출 심사강화로 이어질 수 있어, 중소기업 자금공급 위축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금융회사가 실물경제에 자금을 공급하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미래 수익성과 사업역량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지원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필수다.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현금흐름을 분석하고, 이러한 평가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대출 실행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회사는 사업성 평가 전문가 양성, 핵심성과지표(KPI) 개편, 경영진의 사업성 중심 대출 기조 명확화 등 내부 시스템 전반을 정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회수구조 개편·신담보 제도 도입을=보고서는 또한 사업성 중심 금융 확대를 위해서는 정책금융과 회수구조 전반의 정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정책보증금융에는 산업·기술 분야 단위로 보증을 제공하는 포트폴리오 위탁보증 제도를 도입하고, 정책자금을 민간 금융사를 통해 공급하는 온렌딩 제도에서도 사업계획 기반 심사기준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지역금융기관의 지역재투자 평가 항목에 사업성 기반 자금공급 실적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담았다.

사업성 대출의 회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 회생제도와 담보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다. 보고서는 현행 회생절차의 ‘상대 우선 원칙’을 미국식 ‘절대 우선 원칙’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담보 유무보다는 채권 성격과 사업성에 따라 회수 순위를 재조정하고, 무담보이지만 가치 있는 기업의 회생 가능성을 높이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부동산이 아닌 미래 수익권, 영업권, 무형자산 등을 담보로 인정하는 새로운 담보 제도 도입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디지털·기술 기반 기업이 금융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데 있어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및 민간신용 수준을 고려할 때, 신용 확대가 거시경제에 미치는 긍정 효과는 이미 크게 축소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금융의 실물경제 지원 기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만큼, 사업성이 있는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통해 국가 경제의 성장 기반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