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무들과 함께 숲이 되는 것”…‘처음처럼’ 신영복

프린트

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다른 나무들과 함께 숲이 되는 것”…‘처음처럼’ 신영복 20년 수감생활서 얻은 성찰 저술 다수…‘관계론’ 관점서 새로운 세상 제시

기사입력2016-01-18 18:08

조상현 기자 (chopd@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신영복 교수의 서체로 판매되는 소주 브랜드

무려 20년간의 감옥생활에서 얻은 사람과 삶에 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 한권으로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시대의 지성인’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18일 영원한 안식(영결식)에 들어갔다.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모 소주회사의 브랜드인 ‘처음처럼’이라는 독특한 글씨체를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 글씨체의 주인공이 신 교수며, 이 글씨체는 신 교수의 호를 따 ‘쇠귀체’라고 부른다.

신 교수는 통일혁명당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20년20일동안 수감생활을 하다가 1988년 출소했다. 이듬해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했으며 지난 1998년 사면복권됐다.

신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장기간의 수감 생활을 통해서 얻은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모색을 촉구하는 에세이집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등을 잇따라 출간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신영복 교수의 주요 저서들<사진=뉴시스>

2000년대 이후엔 동양고전을 엮은 ‘강의’, ‘담론’ 등의 저술을 통해 서양철학의 존재론과 대비되는 동양철학의 관계론을 설파하는 등 공동체를 지향하는 ‘인도적 사회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한계에 봉착한 경제 논리와 국가 주도의 성장모델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이웃간 연대라는 관계 속에서 경제문제, 복지문제를 풀어보자는 신 교수의 제안은 정책입안자나 정치인들에게 새로운 길을 여는 사상적 방향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를 ‘나무의 완성이란 낙락장송이 되는 게 아니라 다른 나무들과 함께 숲이 되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체제에 비판적이었지만 가장 서민적인 술인 소주에 자신의 글씨체를 남긴 것은 자연스런 운명일지도 모른다. 오늘, 그 소주를 앞에 두고 한 잔 기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