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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지진 ‘재난의 시대’에 맞선 기계설비 진화
혁신 거듭하는 국내 기계설비 현주소…대한민국 기계설비전시회
- 기사입력2024-05-25 00:00
김범규 기자 (bgk7@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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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열린 기계설비전시회에는 ‘기술’을 활용해 재난사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기업들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중기이코노미예측 불가능한 재난이 흔하게 일어나는 시대다. 폭염과 폭우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가뭄과 장마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처럼 급변해가는 기후와 환경에 인간은 적응해 살아가야만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기반시설이 이에 맞춰줘야 할지도 모른다.지난 22일부터 3일간 서울시 세텍(SETEC)에서 열린 대한민국 기계설비전시회(HVAC KOREA)에서는 이처럼 위기에 직면해 있는 ‘인간의 안전’을 위해 기계설비가 얼마나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줬다.특히 지난 2016년 경북 경주시와 2017년 포항시에 5.8과 5.4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이후, 더 이상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깨닫게 되면서 관련 법령뿐만 아니라 기계설비도 진화해 나갔다. 이뿐만 아니라, 방화, 일산화탄소 중독 등도 기계설비에 의해 제어될 수 있도록 발전해 나가고 있다.화재·지진 등 잦아지는 비상 상황…기계설비의 ‘진화’화재, 지진 등으로 인한 사고는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이에 업계에서는 ‘기술’을 활용해 재난사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회기반 시스템을 기술력으로 보강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좀 더 안전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다.이중 소방펌프는 화재사건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소방펌프는 유지 보수가 쉬워야 하고, 설계가 합리적이어야 하며 무엇보다 결정적인 순간에 제성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만 한다.
두크의 엔진 소방 패키지 시스템. ©중기이코노미㈜두크(DOOCH)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소방전용 입형다단 펌프를 소개했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류기원 부장은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횡형주물펌프는 녹이 잘 슬기 때문에 화재와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고착이 돼 펌프가 재빨리 기동이 안 된다”며, “이 제품은 스테인리스이기 때문에 부식과 고착에 강하고, 기동이 바로 된다. 게다가 고효율 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주물펌프 대비 동력이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듈화된 공법으로 납품하다 보니 설치공간도 많이 줄어들었고, 고장도 적다”며, “현장 조건에 맞춰 개별 설계가 가능하고, 변형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이런 강점은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곳이라면 어디든 들어가는 엔진 소방 패키지 시스템(Engine Fire Fighting Pump System, FSE)을 제작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현장과 공장에서 동시에 공정이 진행되고, 공장에서 생산된 모듈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의 OSC(Off Site Construction) 공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품질은 높였고, 작업으로 인한 안전사고와 폐기물, 공사비는 줄였다. 참고로, 기존 공법의 소방펌프와 비교하면, 10일 이상 소요됐던 공사기간을 하루로 단축했고, 폐자재와 용접 부산물 등 각종 폐기물은 35%, 공사비는 10% 정도 감소시켰다.불이 났을 때, 화염이나 연기가 반대쪽으로 못 넘어가게 함으로써 대형사고로 인한 인명사고를 방지하는 데 꼭 필요한 장치가 방화벽이다. 그리고, 이 방화벽의 핵심장치는 방화댐퍼다.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벨리모서울㈜은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방화댐퍼(MFD)를 들고나왔다.우수형 이사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2021년 8월에 건축법이 개정되면서 연기 감지기를 연동한 방화댐퍼를 쓰도록 규정이 바뀌었다”며, “다른 방화댐퍼에 들어가는 모터댐퍼는 수명이 1년밖에 되지 않지만, 이 제품은 5년을 보장한다. 세계 최고의 정밀기기 제작 노하우를 갖고 있는 스위스 설비가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현재 이 방화댐퍼는 삼성전자반도체를 비롯한 국내의 여러 공장에 납품하고 있고, 아파트, 주상복합건물 등 일반 건축물, 플랜트 쪽에서도 사용하고 있다.이외에도 벨리모서울은 지하주차장의 일산화탄소(CO)뿐만 아니라 이산화질소(NO2)까지 측정할 수 있는 가스 모니터링 디바이스도 선보였다. 작년 하반기에 출시한 이 제품은 모듈 형식으로 돼 있어 센서 안의 부품만 바꿔주면 지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 측정 가능한 면적은 10m 정도며, 규정 농도보다 올라가면 빌딩 자동제어 시스템 쪽으로 알람을 보내준다.하지만, 국내에서는 일산화탄소만을 측정하는 일체형의 제품이 주를 이루는 상황이다. 벨리모서울 이수하 부장은 중기이코노미에 “지하주차장에 배기가스 농도가 높아지면 인체에 영향을 준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인 규제 사항이 없어 일산화탄소 센서만 사용한다. 하지만, 이 제품은 일산화질소까지 측정해 준다”고 강조했다.
벨리모서울의 방화댐퍼(사진 위)와 가스 모니터링 디바이스. ©중기이코노미지진이 났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건축물의 내진 설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지진 시 물탱크 파손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법은 딱히 없었다. 이에 ㈜문창은 50년 전 일본의 건설회사가 건축물에 설계한 받침대에 영감을 받아 전 세계 최초로 스테인리스 면진형 물탱크를 적용했다.윤도헌 해외영업부 차장은 물탱크 모형을 보여주며 “지진이 났을 때 물탱크가 파손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수압과 물의 흐름때문”이라며, “물탱크와 지반을 격리함으로써 지진이 발생했을 때 외력에 의한 물탱크 파손을 방지한다”고 중기이코노미에 설명했다.실제로, 모형에서 타사의 물탱크는 마치 쓰나미가 일어난 것처럼 물이 파도를 치며 벽을 치는 등 지진의 피해를 그대로 받고 있지만, 면진형 물탱크는 지진이 일어난 흐름대로 함께 움직여 물탱크 안의 물이 고요했다.국내 유일의 면진받침 물탱크 기술을 가진 문창은 진도 7.0 규모를 기준으로 7년 전에 부산대 지진방재센터에서 테스트를 완료한 바 있다. 기준을 7.0으로 잡은 이유는 그 이상이 되면 건물이 다 무너져 물탱크를 지키는 일이 소용없기 때문이다.그는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제품을 보완해 왔다. 현재는 시공 부분을 좀 더 완벽하게 구현해 지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며, “아파트, 공장, 학교, 관공서, 군부대 등에 납품하고 있고, 일본, 미국, 대만에 수출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지진에 버티도록 설계된 문창의 스테인리스 면진형 물탱크(오른쪽)와 기존 내진 설계된 물탱크를 비교한 모습. ©중기이코노미더욱 정밀해진 ‘상하수도’…기술력으로 해외에서 ‘인정’소방과 상수도의 물 공급 능력을 이전보다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울트라밸브㈜는 사용자가 원하는 압력대로 물을 내보내 주는 감압밸브를 선보였다.이현재 과장은 중기이코노미에 “희망하는 소형압력치에 맞춰 세팅을 해놓으면 그 압력 그대로 유지해 준다”며, “예를 들어 1.5바(Bar)로 기준선을 맞춰놓으면, 30바의 물 압력이 들어와도 1.5바의 압력으로 내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이런 기술의 원동력은 파일럿식 감압밸브에 있다. 이는 기존의 직통식 감압밸브보다 더욱 긴밀하게 움직여 준다. 특히 타사의 경우 밸브가 90도로 서 있기 때문에 유로가 구불구불하게 꺾어지며 나오게 되는데, 울트라밸브의 밸브는 20도로 누워 있는 형태다 보니 완만하게 곡선을 타면서 흘러나온다. 이런 구조는 동일한 구경 대비 앞으로 물을 뿜어줄 수 있는 유량에도 차이를 가져온다.현재 이 밸브는 소방서와 건설사를 포함해 공공기관 등에 설치돼 있다.
울트라밸브의 감압밸브. ©중기이코노미
한국조인트의 이음관에 그려진 눈금부. ©중기이코노미한국조인트㈜는 배관 내의 온도변화와 열응력으로 인해 얼마나 열팽창이 일어났는지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이음관을 들고나왔다.이영광 주임은 “쇠가 열을 많이 받으면 늘어나게 되는데, 이때 막대기가 탄력 있게 흔들리듯이 낭창낭창해진다. 그렇게 되면 배관같은 경우 끊어지거나 터져 누수로 이어지거나 인명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며, “이 제품은 이를 보완해 주는 아이템”이라고 중기이코노미에 설명했다.작년 말에 출시한 이 제품의 가장 큰 차별점은 줄자처럼 그어진 눈금부다. 이 주임은 “이전에는 리크(leak)가 발생해 누수가 돼야만 교체하거나 재충진을 했지만, 이 눈금부로 인해 조인트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알 수 있다”고 했다.상수도관 기술 하나로 해외에서 인정받은 국내 토종기업도 있다. PPI PIPE는 iPVC 파이프 제조기술로 깐깐하게 제품을 선별하는 미국시장에 진출했다. 최근에는 iPVC 이음관도 개발했는데, 이음관은 물이 일자로 뻗어 나가다가 꺾어지는 부분에 사용되므로 수충격으로 인한 변형 및 파손 방지에 매우 중요하다.이 회사 기술연구소 김영수 이사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수도관으로 쓰이는 주철관은 세월이 흐르면 부식이 생겨 녹물이 나온다”며, “주철관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재료는 플라스틱이지만, 수압이나 충격에 약하기 때문에 못써왔던 건데, iPVC 상수도관은 PVC의 장점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내수압 강도가 국제표준 대비 30배 강하다”고 설명했다.이어 “iPVC 개발을 통해 상수도관으로는 최초로 미국 9개 주의 15개 현장에 수출해 시공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리튬 광산 프로젝트에도 매설돼 있다”며, “상수도관이 해외로 수출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최근에는 은탑산업훈장을 비롯해 무역의 날에 500만불 수출탑도 받았다”고 말했다.
PPI의 iPVC 파이프와 이음관. ©중기이코노미PVC보다 좋은 성능을 가졌다고 해서 임팩트(impact) PVC, 임프루브(improve) PVC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iPVC는 높은 제품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내에서는 많이 안 쓰인다고 한다.김 이사는 “몇몇 공공기관과 평택 미군기지에서 쓰이긴 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많이 찾는 편은 아니다. 이유는 이전부터 써왔던 주철관을 계속 쓰는 관습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또 다른 이유는 중소기업지원법에 의해 오히려 다양한 판로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관 공사는 대개 정부에서 진행하는데, PVC관을 정부에 납품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PPI의 경우 중견기업에 속해 조달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김 이사는 “2000년대 초반에 중소기업을 살리자는 취지로 시행한 제도로 인해 당시 중소기업들이 성장해 중견기업이 됐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국내 납품의 길이 좁아졌다”며, “해외에서는 무조건 성능과 제품력만을 본다”고 덧붙였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